태안 해변길5코스(노을길) 걷기
(2012년 12월 29일 태안 해변길5코스 삼봉에서 꽃지해변까지 걷기)
이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이미 작년의 일이 되어 버렸다.
28일 저녁 한해가 거의 마감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퇴근 후 근래 들어 계속되는 술자리에 지쳐 TV를 보면서 멍~하고 있는데
친구녀석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다.
SERI CEO 매거진에서 안면도 소개 동영상을 봤는데 걷는 길이 좋아 보였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난 약간의 망설임 끝에 가기로 약속했다.
사실은 내일에는 전부터 계속 생각해 놓고 실천하지 못했던 예봉산, 운길산 종주를 하려 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잠깐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겨울에는 긴 산행이 무리라는 생각도 들고, 오랜만에 섬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같이 가기로 약속 했다. 같이 오기로 한 낼모래 나이 오십인 새신랑의 깨소금 신혼살림 얘기도 들을겸...
언젠가 태안쪽에 해안길이 조성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일 수원에서 9시 30분에 친구와 만나기로 하고 걷게 될 길을 검색해 보았다.
길은 4개구간으로 총 연장이 73.9km나 되었다.
* 솔모랫길 : 몽산포~드르니항. 13km
* 노을길 : 백사장항~꽃지. 12km
* 솔향기길 : 만대항~갈두천(풍천교회). 4개코스 42.5km
* 태배길 : 의항해변~방제로일대. 6.4km
으음~~
시간은 없고 걸을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 아침 9시반에 수원에서 친구 차를 타고 태안 백사장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로 하고 음식점에 들어가 해물칼국수와 막걸리 한병을 흡입 하였다.
오늘의 "노을길" 트래킹 코스다.
삼봉해변(남매바위) → 기지포해변 → 창정교 → 안면해변 → 두여해변 → 밧개해변
→ 두에기해변 → 할미할아비바위 → 방포해변 → 꽃다리 → 꽃지해변
원래 백사장항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삼봉해변에서 출발하게 되어
거리가 약간 줄어 10.3km를 걸었다.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3시간 8분이나 소요 되었다.
아마도 해변과 소나무 숲길이 모두 고운 모래로 되어 있어 걷기가 쉽진 않았고,
중간 중간에 낮은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여기가 걷기 시작한 삼봉해변이다.
썰물 때여서 그런지 해변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오랜만에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는 따뜻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온통 하얀 안개로 덮여 있어 시야가 매우 좋지 않은 날이었다.
삼봉해변에 접어 들면 맨 처음 눈에 띄는 풍광이 해변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다.
안내지도에 보니 남매바위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정확히 어느 바위를 지칭하는지는 모르겠다.
삼봉해변은 정말 넓다.
이 정도면 대행여객기가 착륙해도 너끈 할 것 같다.
넓은 땅을 보니 나무라도 심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멍~청한 생각이 든다.
좁은 국토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이상한 강박에 시달린다.
해변가에 대나무로 방책을 만들어 둔 것을 보고 무슨 용도인지 궁금했다.
조금 있다 안내판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모래포집기라고 한다.
이 지역에 해안사구가 발달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모래가 유실되나? 하는 의문이 든다.
바다 바람을 타고 육지쪽에 쌓인 모래가 다시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꽃지해변을 따라 설치된 3.2㎞의 해안 도로를 만들기 위해 쌓았던 옹벽을 철거 한다는 뉴스를 봤다.
옹벽이 생기자 모래가 파도에 쓸려 나가 버리고 사구도 형성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서
다시 옹벽을 철거하고 모래포집기를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자연을 되살린다니 다행이다 싶긴 하지만 옹벽을 만들 때는
'이런 문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탑동 공유수면 매립 등의 환경 파괴 행위를
강행하려는 자들은 그 결과가 어떤 폐해와 비극을 낳을지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조금 파괴하더라도 나라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본인의 치적 쌓기나 개발 수익 등의 순수한(?) 욕심때문에 무모한 짓을 추진 할 것이다.
세상에는 무모한 신념에 차 있거나 순수한 욕망에 몸을 맡긴 머리 또는 양심이 나쁜 놈이 많이 있다.
제발 정신들을 차려야 할텐데... 안면도를 걷다가 갑자기 삼천포로 가버렸다.
해변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 해송 숲속을 걸을 수 있도록 해변길이 조성되어 있는 구간도 있다.
이 소나무 숲이 너무도 울창한 뿐더러 그 면적도 방대하다고 느껴져 누가 이 숲을 인공적으로 가꾸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봤더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안면도 자연휴양림"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안면도에는 국내 유일의 소나무 천연림으로서 수령 100년 내외의 안면 소나무 천연림이 430ha에
집단적으로 울창하게 자라고 있고, 고려때부터 궁재와 배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하였으나 도남벌이
심해지자 고려때부터 왕실에서 특별 관리하였으며, 1965년도부터 충청남도에서 관리하고 있다."
아! 나의 놀라운 탐구력으로 이 숲의 정체를 밝혀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냅두세요. 그러다 말겠지요.
숲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찍은 풍경이다.
하늘이 하도 낮게 내려 앉아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하다.
소나무 숲길이 위의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길을 천사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휠체어나 유모차도 통행 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는데 길이를 일부러 1,004m로 맞추어 놓았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모래 둔덕이 해안사구이다.
이 해안사구에는 갯그령, 통보리사초, 갯메꽃 등의 다양한 사구 식물들이 서식한다고 한다.
지금은 누런 잔디로 밖에 보이진 않지만 봄이 되면 저 사구에서 다양한 식물들이 새싹을 튀우겠지...
다시 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고...
소나무 숲에서 해안쪽으로 이렇게 데크와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도 있다.
지금은 추워서 앉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봄, 가을엔 여기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꾸벅거리기에 딱 좋을 것 같은 장소다.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길은 미세한 모래입자로 덮여 있다.
아마도 해변에서 육지쪽으로 부는 바람에 날려온 미세한 모래가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생성된 지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느낌이다. 딱딱한 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소나무 숲길이 개울을 건너기 위한 창정교와 맞닿아 있다.
위 사진은 창정교를 건너 다시 숲길로 들어가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하늘, 바다, 강(개울), 눈, 나무, 숲... 많은 종류의 자연이 녹아 있는 장면이다.
여기가 안면해변이다.
길 가다 나무가 멋있어서 한컷 찍었다.
하얀 하늘 때문에 세상이 온통 색이 바래 버렸다.
여기서 해변길이 끊기고 산길이 시작된다.
물론 해발 50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올랐더니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두여전망대의 모습이다.
오늘은 전망대에 올랐으나 전망 할 대상이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뵈는게 있어야지...
겨우 바다에 떠있는 조그마한 바위섬 하나 보는 재미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썰물때에는 여기 두여 해변에
"대규모 지각운동에 의해 지층이 큰 물결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형태의 습곡이
특이하게 해변을 따라 노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마저 지금은 밀물 때라 물속에 잠겨 있다.
이래저래 오늘은 걷기에만 만족해야만 할 듯 싶다.
두여 전망대에서 다시 산을 내려와 평지를 걷다 보니
해풍에 시달린 해송이 줄지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꽤나 바람에 시달렸나 보다.
오른쪽은 밧개해변이다.
위 사진은 두에기해변이다.
이 동네 해변 이름들이 독특하다.
두여, 두에기, 밧개, 꽃지...
한자 이름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한글 지명 인 것 같은데 그 유래를 설명해 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멀리 바다위에 떠있는 섬이 할미할아비바위 이다.
다시 할미할아비바위를 정면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기 위해서는
나지막한 산을 하나 올라야 한다.
노을길을 걷다 보니 작년 여름에 갔던 금오도 비렁길이 생각난다.
금오도 비렁길은 해안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는 구간이 대부분이었고
태안 안면도의 노을길은 주로 해변길이고 잠깐 잠깐 해변이 끊긴 구간만 산길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각각의 코스마다 개성이 있고 나름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남해의 옥빛 바다색은 서해에서는 볼 수 없다는 극명한 차이가 있긴 하다.
전망대에 도착하기 직전에 지나온 두에기해변을 찍은 사진이다.
서있는 산이 해발 100m도 안되는데 꽤나 높아 보인다.
꽃지해변과 할미할아비바위를 조망 할 수 잇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약 1,100년전 신라 42대 흥덕왕 4년(838년), 해상왕 장보고가 견승포(지금의 안면도 방포)를
기지로 삼고 주둔 하였을때 당시 기지사령관이었던 승언은 그의 부인과 금슬이 매우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정명령을 받고 떠난 승언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 미도가 일편단심으로
기다리다 죽어서 바위가 되는데 이 바위가 할미바위입니다. 그 후 어느날 밤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옆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았는데
이를 할아비바위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는 이 표지를 읽고 어느 해변에 가도 쌍으로 되어 있는 바위나 섬이 있으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시니컬하게 얘기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조금 특이한 풍경에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인지
기대심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닭과 계란의 문제인가?
아무튼 왼쪽의 할미바위, 오른쪽의 할아비바위이다.
재미없게 얘기하면 암석으로 구성된 조그마한 두개의 섬이다.
이 두섬을 배경으로한 낙조가 전국적으로 꽤나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진가들이 출사하는 곳이기도 하고...
'안면도 꽃지 할미/할아비바위'가 명승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명승"이란 말이 "보물"이나 "국보"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 같은데
난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오늘 걷기의 종착에 거의 다다랐다.
꽃다리, 주황색으로 칠해진 아치교다.
건너편 꽃지해변으로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으나
이 다리로 인해 발품도 줄고 볼거리도 생겼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싶다.
사실 다리의 모양보단 이름이 더 예쁘다.
"꽃다리"
여기가 오늘 여정의 끝인 꽃지 해변이다.
지금은 밀물 때라 해변이 좁아 보인다.
해산물을 파는 상인들이 해변 입구에 텐트와 파라솔을 쳐 놓았다.
우리 일행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관계로 어묵 한꼬치와 따뜻한 한컵의 국물로
허기만 달랜 후 저녁을 먹기위해 차로 이동했다.
이 날도 집에 도착하기 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었다.
점차 빗방울이 눈보라로 변하는데 원하는 식당을 놓쳐 헤메고...
겨우 식당을 찾아 저녁먹고 다시 신혼살림집에 가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고...
난 수원에서 잠실가는 막차를 승용차로 따라 잡아 겨우 겨우 광역버스를 집어 타고...
집에는 잘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