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오후 다섯시... ...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하루를 보낼순 없다는 다급함이 엄습한다.
배 뚜들기던 여유로움을 뒤로 한채 산책준비를 서두른다.
걸으며 들을 팟캐스트 방송 다운 받고 반팔 셔츠와 바지를 챙긴다. 아! 여분의 밧데리도...
누구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아침에 깍지 않은 수염은 왜이리 거슬리는지. 걸으며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라도 차려야 한다는 건가. 결국 전기면도기로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 밀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집 앞으로 몇 발자국만 옮기면 산책인데 과도한 의미를 부여 하면서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결국 잘 안하게 만드는 최면을 걸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아무튼 가장 만만한 코스이며 뇌가 정지 한채 두 다리가 의사결정을 하면 자동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건너 올림픽공원 북2문. 성내천 둑방길을 따라 한강둔치공원에 진입...
계속 걷다보면 올림픽대교 올림픽대교 밑 버드나무지나 천호대교... 다음은 광진교. 평소 같으면 광진교에 올라 아차산으로 넘어 갔겠지만 오늘은 산책이므로 계속 직진이다.
사실 내게 산책이란 의미가 단순하진 않다. 내가 하고 있는 유일한 운동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하며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멍~한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의 연속이다.
직진을 계속하면 한강변에 조성된 암사 생태탐방길이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양옆엔 내 키만큼이나 자란 갈대가 나오고 길가엔 예쁜 꽃들이 날 유혹한다.
이런 조용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누군가에겐 감사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솟는다.
조금만 더 가면 구리암사대교 현장이 나온다. 꽤나 오랜동안 공사하고 있다. 여기가 터닝포인트다.
이제 왔던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한체 하루를 마감하면서 터덜터덜 터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목표가 있었다기 보다는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더 걷기는 무리라서 멈추고 이젠 원위치 하는 시간일 뿐이다.
뭐 대단한게 있겠나 싶다. 다들 그렇게 사는거 아니었나. 뻔뻔한 심정으로 외친다. 아님~~ 말고.더 보기
#2 수락산
오랫만에 수락산을 다녀왔다. 수락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콸콸 흐르는 계곡물을 보면서 등산 할 수 있어서 였는데 오늘은 전혀 아니었다.
요즈음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다 보니 계곡물은 자취를 감추고 먼지만 펄펄 날렸다.
조금 늦게 시작한 등산이 오늘따라 매우 힘들게 느껴졌다. 계곡물이 없어져서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정상은 637m. 서울 근교 산중에 그리 높은 편이 아닌데도 오르기가 만만치가 않다. 이제 정상이다 싶은 생각이 다섯번정도 들어야 진짜 정상이 나타난다.
특히 마지막 몇백미터는 바위에 박혀있는 쇠줄을 잡고 급경사를 올라야 하는데 숨고르기가 쉽지 않아 몇번이고 쉬었다 올랐다.
어짜피 내려와야 할 산이지만 기를 쓰고 오르는 이유는 뭘까.
정상을 보고 싶어서? 사실 정상에는 조그마한 표지석 외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정상에서 보는 경치가 특별하지도 않고... 난 그냥 거기가 정상이라니까 간다. 이왕 왔으니 찍고 돌아서려고... 하지만 힘들게 올라온거에 비하면 허탈하기도 해서 십여분 이상은 쭈뼛거리며 주위를 서성인다. 정상을 밟은 기분을 느껴보려고. 에베레스트가 아니라서 역시 큰 감흥은 없다.
이제 가장 큰 관심사는 얼마쯤 내려가다 어디에 자리를 펴느냐다.
비록 김밥 한줄이지만 편안한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고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감상할 명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잘몰랐는데 정상을 밟는 시간보다 점점 이시간이 더 즐거워 진다.더 보기
# 하얀산
산에 오를 때 하얀 하늘이었다
간간이 그 하늘을 뚫고 가느다란 햇살이 내비쳤지만 갈증을 더할 뿐이다
온 산에서 물 한방울 솟지 않는다 신록은 현저히 시들거리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땀방울만 후두둑 떨어뜨린다
발걸음을 뗄때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가뭄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