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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8 우이령길 6
  2. 2012.03.07 6

우이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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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걸었다. 우이령길.
목요일이던가. 갑자기 이번주 토요일엔 어딜 걸을까 하다, 작년부터 세번이나 예약만 하고 가지 못했던 우이령길이나 가볼까 생각하며 북한산 국립공원 누리집에 접속했다. 이길은 자연보호를 위해 우이동과 교현리 양쪽에서 하루 각각 500명씩 1000명 예약자에 한해 걸을 수 있도록 허가한다. 누리집에 들어가보니 역시 교현리에서 우이동 방향으론 예약이 끝났고 반대방향은 우연히 딱 한자리 남아있었다. 현재 예약자 399명. 나머지 100명은 나이드신 어른들 전화예약자 몫이다. 그 한자리를 차지해 가까스로 예약에 성공했다.

어제 여의도공원의 여파로 몸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문밖으로 나서면 된다는 신념으로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우이동까지는 상당히 멀다. 전철3번 갈아타고 한번의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다. 작년에 북한산 둘레길 걸으면서 몇번 와본터라 익숙하다. 우이동에서 내려 김밥 한줄, 삶은계란 세알을 샀다. 집에서 가져온 커피담은 보온병이 있으므로 이정도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총거리는 6.8km, 3시간 30분 소요된다고 나와있다. 이상하다. 이정도면 산길이라 하더라도 2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시간을 너무 넉넉하게 잡아 놓은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의심이 현실이 되었다.

 


입구 초입이다. 나는 우이령길 초소가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거의 이길을 2Km 정도 걸어야 초소를 만날 수 있었다.
전 주에도 하늘공원에 가서 걷기를 했는데 바람이 꽤나 차가웠다. 그게 생각난 나는 옷을 오바스펙으로 입고 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상의에 등산셔츠, 조끼, 등산용 점퍼를 입었는데 1Km 정도 걷다가 조끼를 벗어 배낭에 넣었고 3Km 정도 걷다가 등산용점퍼를 벗어 배낭에 묶었다.


잘 정돈된 흙길을 걷다보니 계곡사이를 걷널 수 있도록 나무로 조성된 다리가 나왔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이젠 어딜가나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배려한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적은 돈을 들여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좋은 예란 생각도 든다.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돌만 있으면 쌓는다. 석공도 아니면서... 다들 빌어야 할 소원들이 참 많은가 보다. 난 별로 쌓고 싶지는 않다. 빌어야 할 소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니컬한 태도 때문일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초소에 도착했다. 신분증으로 예약자 확인을 하고 오늘 걸을 길을 안내도를 보고 확인했다. 지도를 본다 한들 길이 하나 밖에 없고 어디 딴 곳으로 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큰 의미는 없다.


안내도에는 볼거리가 굉장히 많이 있는 것처럼 표기되어 있지만 정작 볼거리는 많지 않다. 단지 이길은 많은 기간동안 일반인들에게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면 점이 여느 길과는 좀 다른점일 것이다.


우이령길은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어 걷기에 매우 편한 감촉을 준다. 초소까지도 오르막이었지만 이후로도 오르막이 계속된다. 내 머리속으로 우이령길을 우이동길로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령"은 고개를 뜻함을 알았으면서 그냥 평탄한 길이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 했다가 오르막이 한참을 계속되자 그제서야 아, 이길이 고갯길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평범한 사실인데 몸으로 느껴야 이해를 한다. 입맛이 개운치 않다.


길을 걷다 보니 오봉전망대가 나온다. 봉우리가 다섯개라 오봉이라 부르나 보다. 표지판의 유래를 읽다 피식 김빠진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저런 전설은 어떤 경위를 통해 만들어지고 구전될까?


하늘에 구름이 많아 전반적으로 흐린데 오봉만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봉우리에 돌을 얹은 장사가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을 차지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예쁘고 권세있는집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경쟁이 필수였나보다. 스토리의 프레임이 너무 진부하다.


계곡의 곳곳에는 아직도 얼음이 한자리 차지하고 아직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도 저 얼음 밑에서는 조금씩 녹은 물들이 모여 졸졸졸 흐르며 계곡의 본류에 모여 이젠 꽤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어느 순간 걷다 보니 내리막길이다. 어,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시간상으로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 끝이 나면 안되는데 하며 천천히 걸을 걸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


교현리 초소가 1Km 정도 남았을 무렵 계곡에 물을 가두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보가 하나 있었다. 주위에 군부대가 있어 이 물을 어디엔가 쓰려고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바람도 부드럽고 여기저기서 새소리도 들리고 눈녹은 물들이 흐르는 물소리도 들었다. 계곡에선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처음엔 무슨 새가 이렇게 시끄럽게 울까 하고 주위를 둘러 봤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다 마침내 깨달았다. 세상에 서울에 양서류가 살아있다니... 환경보호란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는것과 동의어다. 만약 계곡에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펜스를 치지 않았다면 저놈들이 남아있을까? 참, 사람이 문제다.


소리파일을 세심하게 들어보면 물흐르는 소리, 바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지나가던 까마귀소리가 들린다.

 



갯버들이다. 이놈들도 눈치챘나보다. 개구리도 갯버들도 때가 되면 자기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기특하다.


전체적으로 2시간 30분정도 소요 되었다. 아직 3시 밖에 안됐는데...
아무래도 모자란 부분은 광진교를 걸으며 보충해야 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이령길 걷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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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다가와
짐짓 딴청을 부린다

하지만 누구나 알아챈다
오면서 일으킨
바람, 냄새, 소리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다
마침내 거리로 나온다

지나는 곳마다
장이 서고

스치는 곳마다
잔치가 열린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는체 할까 하는
마음이 들 때면
이미 자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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