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을 빙자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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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1일 응봉산 설익은 개나리맞이 산책)

 

일요일.

 

아침에 깨어 보니 누군가 내 머리를 헤드록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맥주도 뒤끝 장난 아니네...

최소한 토요일은 쉬었어야 하는데...

 

마눌님은 처남과 진즉 산으로 출타하셨고

집안엔 괴괴하고 음산한 기운만이 충만해 있었다.

 

그나저나

이 애매한 오전 9시에

요즘 같이 겨울도 봄도 아닌 이 애매한 계절에

꽃구경을 가자니 아직 제철이 아니고

산에 가자니 몸이 죽죽 늘어지는

이런 갈등 때리는 상황속에서

어찌 이 난국을 헤쳐 나갈까...조금 생각하다 귀찮아졌다.

 

그래도 일단 밥은 먹고 보자는 생존 본능에 의존해 부엌을 수색했다.

마침 엊그제 순전히 나를 위해(?) 끓여 놓았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하는

북어국이 국물이 쫄은 채로 남아 있었다.

 

쫄은 북어국에 과감히 대충 한컵 정도를 가수(加水) 한 후

보글보글 끓기를 기다렸다가

색깔마져 맛있어 보이는

마법의 가루 MSG 한숟갈, 후추 조금, 고추가루... 없다. 고추장 듬뿍 한숟갈.

첨가 후 끓였다.

그리고 그 국에 밥말아 먹었다.

라면이 있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후

결국 집 밖으로의 행차를 일단 포기 한 후

TV를 보다가

PC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먼저 박수건달... 건달이 신내림을 받은 후 벌어지는 여러 헤프닝을 담은 영화

다음이 분노의 윤리학... 누가 누가 제일 나쁜 사람일까요? 라는 다소 특이한 주제의 영화

두편을 연달아 감상했다. (사실 1/3정도는 자다 깨다 해서 제목을 기억해 내기도 힘들었다)

 

어느새 벽시계는 오후 4시가 지나가고 있다고 팔을 비틀어 대고 있었고

내 허리와 팔다리의 저림도 인계점에 다다를 즈음...

 

과감하게 일어섰다.

꽃구경이나 하러 가자고.

아직은 서울 어디를 가도 만개한 꽃을 구경 할 수 없을테지만

미리 점찍어 놓은 응봉산 산책이라도 하자고...

 

 

 

결국 2호선 뚝섬역에 내려

별로 볼것도 없고 감동도 없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서울의 숲을 향해 걸었다.

 

지나가다 입구만 봤지 실제 방문은 처음인 공원...

음... 역시 그냥 공원이다.

나에게 이 공원은 응봉산에 접근하기 위한 통로의 역할. 그 이상의 의미는 없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공원을 지나 한강변으로 나오자 시원한 강바람이 날 맞아 주었다.

이리라도 엉덩이를 방바닥에서 떼고 나왔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이미 해는 뉘엇거리기 시작하는데 언제 꽃구경을 한담...

안달이 나기 시작해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개나리로 유명한 응봉산에 왔지만 예상대로 아직은 볕바른 쪽에만 피어 있을뿐

와~ 하고 탄성이 나오는 절정은 아직 이르다.

다음주 정도엔 최고조에 달할텐데...아쉽다.

그땐 바쁜데...

 

 

 

게다가 날도 어두어지고 있어 때깔도 안산다...ㅠㅠ

 

 

 

 

 

산수유는 오늘따라 왜이리 창백하게 보이는지.

개나리의 원초적 노란색에 질렸는지...

 

 

 

 

그래도 카메라를 조금 안쪽으로 들이미니

그 속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해 떨어지는 남산을 바라보다

아직은 으스스한 저녁바람에 서둘러 자크를 올린다.

아쉽지만 집에 가자...

 

 

 

다시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귀가하면서

일요일 저녁이지만 동네 친구를 꼬셔 말어...

 

한참을 고민하는데 마눌님이 친히 전화를 주셨다.

새지 말고 집으로 직진 할 것. 고기 구워 놓겠음...

 

난 일요일 저녁에 조금은 질긴 쇠고기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좀 질기다고 항변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쇠고기이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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