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화물터미날에서 청계산 질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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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3일 청계산 세로로 관통하기)

 

 

전주 토요일. 월실적 Report 작성때문에 출근하느라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을 놓쳐 버렸다.

 

마눌님이 예봉산에 친구와 등반하러 가는데 약속시간이 늦었다고 차로 데려달래서, 

모셔다 드리고 출근하려고 차를 몰았다.

예봉산 등산 진입로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하늘은 푸르른데 예봉산 정상에 하얗게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정상에 올라 그 풍경을 즐기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았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마눌님이 찍어온 사진을 보니

역시 예상대로 산의 정상 부근에는 환상적인 전경이 펼쳐졌었다.

상고대는 강이나 호수 근처가 아니더라도 산을 지나가는 습기 가득한 구름 때문에도 형성되기도 하나 보다.

 

어찌됐든 아깝다.

솜씨야 어떻든 코 앞에 펼쳐진 보기 힘든 광경을 눈에도 사진기에도 담을 수 있었는데...

 

어제의 아쉬움을 달랠겸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고 베낭을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청계산이다.

 

작년부터 여러번 청계산에 올랐지만 오늘은 양재 화물터미널 뒤에서 산을 타기로 마음 먹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청광종주를 시작하는 곳이라기에

나도 언젠가는 시도 하게 될 청광종주를 연습한다는 셈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나에겐 전적으로 무리다.

10시간 정도 산을 타야 한다는데 난 이제까지 5~6시간 정도 등산한 경험 밖에 없고

또 그 정도 가지고도 넉다운 돼버리니 갈길이 멀다.

 

 

  

 

처음 지도를 보고 계획을 세울 때는 망경대를 지나 과천 대공원역으로 하산하려고 하였으나

청계사에서 잠깐 헷갈리는 바람에 의왕방면으로 하산해 버리고 말았다.

이날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진 후의 기록을 합하면 총 5시간 40분, 약 12km의 산행을 했다.

 

등산코스는 아래와 같다.

양재 화물트럭터미날 → 굴바위산 → 옥녀봉(376m) → 매바위(578m) → 매봉(582.5m)

→ 만경대(618m) → 석기봉(583m)  → 이수봉(545m)  → 청계사 → 청계산맑은숲공원

 

 

 

양재동 화물터미날 정류장에서 내려 청계산 방향으로 길을 건너다 보니

몇몇 산행객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 사람들 덕분에 들머리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진 않겠다 싶었다.

 

등산로 입구엔 라면, 막걸리 등을 파는 허름한 무허가 주막(?)이 보였다.

아침이지만 웬지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스물거렸다.

 

집을 나올때 오늘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으로 비니를 챙기지 않았을 뿐더러

모자 달린 스키복을 팽개친채 단촐한 바람막이만 입었다.

겨우 얇디 얇은 두건으로 귀를 가리는게 전부였지만

그나마 두건마저 챙기지 않았다면 내 귀를 추위에 헌납 할 뻔 했다.

어찌나 겨울바람이 매섭던지...

 

 

 

이제 보니 이 표지판을 과천시에서 만들어 놓았다.

서울 서초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과천시로 넘어 왔나 보다.

 

옥녀봉을 향해 열심히 등산을 하는데 조금 오르기 버거운 고개를 만났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가까스로 고개를 올랐는데

50 중반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왔다.

 

"아저씨! 올라 오시는 폼이 꼭 임꺽정 같아요!"

"네?"

"여기가 임꺽정 길이잖아요. 그런데 아저씨 올라오시는 모습이 꼭 임꺽정 같았다구요"

"아~~ 네..."

 

아주머니는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잠시 헷갈렸다.

임꺽정의 이미지가 뭔가?

아무리 임꺽정이 의적이라지만 결국 산적 아닌가?

내가 추위를 조금이라도 달래 보려고 두건을 써서 그런가?

 

냅두자. 그 아주머니가 잠깐이라도 즐거워 했으면 됐지 뭐...

 

 

         

 

이 산에서도 곤줄박이와 박새를 만났다.

겨울산에서 이 놈들이 오직 원하는 단 한가지는... 먹이.

 

미안. 난 새우깡 같은거 가지고 다니지 않는단다.

내 베낭을 뒤져봤자 컵라면 한개, 막걸리 한 병이 다인데

막걸리는 너의 관심사가 아닐테고

컵라면은 나의 생존 필수품이라서 양보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쟤네들 용으로 새우깡 한봉지씩 가지고 다니던지 해야겠다.

 

 

 

옥녀봉에 도착했다.

옥녀봉의 유래를 설명하는 표지판에 의하면

"옥녀봉은 봉우리가 예쁜 여성처럼 보여 이 이름이 붙었다 한다"

나만 느끼나? 이 에로틱한 전설을...

 

하긴 376m의 낮은 봉우리라고 하지만 나름 힘들여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는데

누가 이 표지판을 읽으며 에로틱한 감상을 느끼겠는가?

 

한쪽 구석 벤치에서는 젊은 처자 둘이서 막걸리 병을 마주 한 채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20대 여성 둘이 산위에 오른 모습도 그러려니와

장수막걸리 한병을 가운데 두고 벤치에 마주 앉아 즐겁게 얘기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경스런 풍경으로 다가왔다.

참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하긴 20대에 무엇을 한들 좋아 보이지 않겠는가?

 

 

 

다시 매봉을 향해서 전진한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는 소나무들이 서있다.

소나무의 뿌리를 보호하려고 돌로 단을 쌓아 놓았다.

산에 다닐수록 소나무와는 뭔지 모를 애틋함이 쌓여간다.

 

 

 

청계산 등산의 그닥 좋지 못한 면 중 하나는 계단 일 것이다.

철도 침목 같은 나무로 쌓아 놓은 계단이 끝도 없이 펼쳐 진다.

계단마다 붙어 있는 숫자를 본건 3백 몇십번부터 였는데

아무튼 이제 시작이다.

 

 

 

아직은 많이 춥고

꽃피는 봄은 멀었다.

 

하지만 쟤네들은

준비를 마쳤다. 이미

 

조금 있으면

세상의 모든 식물들처럼

여린 새순을 수줍게 내보일게다.

 

그때 또 보자꾸나.


니들도

모든 동물의 애기들처럼

솜털 달린 이파리를

빼꼼히 내밀 때가

가장 예쁘더라.

 

 

 

옥녀봉을 지나 매봉을 향해 전진하던 중

전망이 확트인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뒤를 돌아본 순간

아~~ 서울이 구름에 빠져버린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펑펑 쏟을 기세고

지상엔 안개가 한가득이었다.

 

지상의 낮은 모든 것들을 생략하고 나니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정도가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산 어디갔나?

 

안개 속에 파묻힌 서울을 보다 보니

도쿄타워에서 내려다본 동경이 떠오른다.

지평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도시... 그리고 평지.

 

서울은 동경과 사뭇 다르다.

높이의 고저가 있고 뭔가 변화가 있다.

하지만 오늘 안개에 휩싸인 모습은

구름위로 떠오른 산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이 평준화되어 지평선과 마주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도쿄와 비교하는건 좀 억지인가?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같은 장소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저멀리 검단산으로 추정되는 산이 보인다.

이 방향으로 제일 높은 산이 검단산이므로 맞을 것 같긴 하지만 자신 할 수 없다.

 

오늘 구름도 두텁고 안개도 짙게 끼어 전망이 좋지 않았지만

덕분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어 흥미로운 광경을 접할 수 있었다.

 

 

 

청계산 정상 만경대다.

청계산을 여러번 등반하면서도 저기 한 번을 가보지 않았다.

첫째로 저기로 가는 길을 몰랐으며

두번째 매봉에 도착 한 후 만경대에 갈 정도의 체력이나 의지나 남아 있지 않았었다.

세번째 군기지가 있다는 걸 알고 막연하게 가면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오늘은 간다.

 

 

 

매봉을 불과 100m 남기고 매바위가 있다.

여기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조망된다.

앞이 확 트여 있어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과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늘 같이 안개에 휩싸인 날은 제외지만...

 

 

 

오늘도 무사히 매봉에 도착했다.

정확히 1,483개의 계단을 오르면 볼 수 있는 매봉 표지석이다.

표지석이 꽤나 거창하다.

 

벌써 1시 반을 지나고 있어 점심을 먹기 위해 매봉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은 컵라면에 나름 온기를 유지하고 있던

뜨거웠었던 보온병 물을 부어

면발을 불린 후 후루룩 마시듯 해치웠다.

 

막걸리는 만찬에 곁들이는 포도주같이

보온컵 뚜껑에 따라 홀짝홀짝 마셨다.

 

그러다 보니

라면을 먹으면서 반주로 막걸리를 마신 건지

막걸리를 마시면서 안주로 라면을  먹은건지 헷갈린다.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결론적으로 둘다 섭취 했다는 사실이다.

 

 

 

만경대 근처에서 찍은 모습이다.

만경대의 정점은 철조망으로 가둬진 군부대 안에 있다.

 

철조망을 돌아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휘날렸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오늘 저녁부터 눈이 내린다고 하였는데

조금 당겨졌나 보다.

 

 

 

망경대와 석기봉을 지나 계속 전진하다 보니 평평하게 조성된 곳을 만났다.

여기가 헬기장인가 보다.

임도로 조성된 도로도 보인다.

어디가 어딘지 좀 어리버리 하다.

 

 

 

눈이 한참을 쏟아지다가

눈발이 가늘어지고 있었다.

3시 가까워진 시각.

이젠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그 와중에 소나무 사진 몇장을 담아 본다.

 

 

 

 

 

 

 

절고개능선에서 잠깐 고민을 한다.

 

어짜피 하산은 청계사 방면으로 해야 하지만

그냥 산을 내려가기엔 아쉬움이 남아 이수봉을 갔다 올 것이냐?는 고민...

까짓 편도 500m, 왕복 1km 밖에 안되는데 무슨 고민씩이나.

체력은 약하면서 기상은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이수봉 찍었다.

 

표지석 인증샷 찍은 후

뒤도 안돌아 보고 다시 절고개능선으로 Go Go~~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사진 가운데 보이는 호수(조절저수지?) 방면으로

하산 했어야 한다.

 

항상 그렇지만 주위를 조금만 덜 기울이면

어느새 엉뚱한 곳에 와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얘들도 뭔가 준비하고 있다.

다들 다가오는 계절이 되면

터뜨릴 한방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청계사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이 산죽이다.

절에 진입하는 초입에 무리지어 자생하면서

예의 그 푸르름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다.

 

 

 

청계사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와불을 모시고 있다.

언제 조성하여 모셨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절에서 흔히 볼 수 없던 형태의 부처님인 건 확실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석을 표면에 붙이고 금색, 검정색 등의 색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죄송한 얘기지만 다리 모양은 로보트 아톰다리를 보는 것처럼 뭔가 부자연스럽다.

좀더 예술성을 갖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쪽 돌담 밑에 각종 동자승, 석탑, 부처님과 보살상들의 미니어쳐를 모셔 놓은 곳이 있었다.

동자승이 다리를 포개고 목탁을 두드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아마도 저 동자승이 나중에 대사가 되었으리라...

 

 

 

이 절에는 특이하게도 마당 한가운데에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우물을 보호하기 위한 전각도 지어져 있고...

물이 땅에서부터 샘솟나?

 

 

 

대웅전의 크기는 소박하다.

미쳐 이 절의 유래나 창건기를 써놓은 표지판을 읽지 못해

역사를 알지 못한다. 외형으로 보아선 오래되어 보이진 않는데...

 

 

 

이런 석물들이 계단에 도열해 있다.

어떤 의미의 인물상인지 모른다...쩝

 

 

청계사에서 다시 산길을 타야 과천 대공원방면으로 갈 수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 도로가 눈앞에 펼쳐지니 아무 생각없이 당연한듯 내려와 걸었다.

가다보니 이상해서 검색해 보니 엉뚱한 방향이었고

이미 때는 늦었으므로 계속 전진했다.

여러 주막들이 나를 유혹하였으나 버스를 탈 수 있는 대로변까지 너무 멀어

꾹꾹 참으며 걸었다.

아이젠을 벗은 뒤 두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으며... 외롭게 외롭게...

 

조금 뒤 알 수 있었다.

남들은 주막에서 한잔씩 걸친 후 마을버스를 타고 전절역으로 간편하게 이동한다는 사실을...

어쩐지 자동차도로를 걷는 내내 등산객 한명도 보이지 않더라니...
3km정도를 실컷 걸은 후 마을버스를 탔다.

뭐냐? 이 손해보는 느낌은?

 

 

 

이 추운 겨울에도 개울엔 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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