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산책 -
가끔씩 주말에
산에 가기 싫을 때,
TV에서 더 이상 볼 게 없을 때,
이러다 누구처럼 침대에 꿰메지는 형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질 때
큰맘먹고 한강 산책을 나간다.
모자와 손수건을 챙기고
걷다 들을 팟캐스트 방송을 다운 받고
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맨 후
항상 같은 코스로 길을 나선다.
이제 단풍을 맞을 때가 되었건만
아직은 한 낮의 따가운 햇살이 목덜미를 쪼아댄다.
성내천 뚝방길에 이르러 찍을 만한 꽃이 없나
두리번 거리지만 서양등골나물과 환삼덩굴만 제철을 만났다.
▲ 환삼덩굴
▲ 서양등골나물
나에겐 멀리서 보면 예쁘지만 자세히 보면 싫어지는
거의 유일한 꽃이 '등골'이 이름에 들어간 꽃들이다.
등골나물, 골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이름도 싫지만 생김새를 자세히 보면 이름이 떠올라 더더욱 싫어진다.
선입관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아쉬움을 달래러
고마리, 미꾸리낚시, 개여뀌, 갈퀴나물, 며느리밑씻개, 수크령, 부들레야, 박주가리 같은 얘들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인공적인 개천가에서 얘들이라도 만났으니 본전치기 정도는 되었다고 위로 하며,
이제 '노친네 전국유람 모드'로 '쉬엄쉬엄 걷기'에 돌입한다.
▲ 고마리
▲ 미꾸리낚시
▲ 개여뀌
▲ 갈퀴나물
▲ 며느리밑씻개
▲ 수크령
▲ 부들레야(Buddleja davidii, Butterfly Bush)
▲ 박주가리
마침내 트랭글이 5Km 지점을 통과했다는 메시지를 읊어줄 때 쯤이면
참새의 방앗간(천호대교 밑 편의점)을 이미 뒤로 한 지점이다.
그 방앗간은 되돌아 올 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전진 하지만 이미 마음은 콩밭에 널부러져 있다.
오늘은 시간도 넉넉하고,
빨리 집에 돌아가 봐야 땅콩 껍질 까는 사역 외엔
킬링타임거리가 없으므로 왕복 15km를 채우기로 마음먹는다.
암사생태공원을 질러 가다 또 다시
산국, 좀작살나무, 찔레꽃 열매, 억새와 파란 하늘에 마음을 빼앗겨
걷기 반, 촬영 반 모드로 어슬렁거리다가 마침내 종착점에 도착한다.
▲ 산국 & 찔레꽃열매
▲ 좀작살나무
▲ 찔레꽃열매
이제 유턴하여 집으로... 아니 방앗간으로 향한다.
오늘의 운동효과를 원점으로 되돌려 나의 우람한 몸집을 유지하고,
요기와 취기(=라면과 막걸리)를 아주 저렴하게 해결해 주는 파라다이스로...
여기까지가 평범한 주말의 모습인데 약간의 변수가 발생했다.
잠원에서 팔당까지 자전거를 탄 후 집으로 되돌아 가던 동창을 마주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막걸리를 권했지만 음주 레이싱으로는 귀가가 어렵다는 완곡한 거절 끝에
음주도보는 법으로 탄압하지 못하는 헛점을 이용해 나만 마시기로 하고 얘기 꽃을 피웠다.
어느새 해는 꼴깍~하고 넘어가며 화려한 노을도 선사해 주었다.
물론 땅콩껍질 까기 보단 훨씬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되돌아 가는 발걸음은 꽤나 무거웠다.
음주 도보 4km는 만만치 않더라는 후문...
'하루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러지성 비염 (2) | 2015.09.16 |
---|---|
4.16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2) | 2015.04.17 |
해 (8) | 2013.11.11 |
꽃구경을 빙자한 산책 (6) | 2013.04.01 |
전남 장흥에서 퍼온 봄소식 (5) | 2013.03.18 |
- 닭의장풀 -
누구나 봤을 법한 꽃.
풀밭, 냇가, 밭둑... 습하고 약간 그늘진 곳에서 흔하게 보이는 꽃.
짙은 녹색의 풀밭에서 아주 조그맣지만 짙은 청색을 띠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 꽃.
닭의장풀이다.
닭장 주변에서도 잘 자란다고 해서 닭의장풀,
닭의 벼슬을 닮았대서 달개비로 불리며
영문명 dayflower는 아침에 꽃이 피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시든다는 의미라고 한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의 포에 싸여 달린다.
포는 하트가 접힌 모양인데 가느다란 털이 나있다.
꽃잎은 부채처럼 펼쳐진 짙은 청색 잎이 2장, 아래쪽에 흰색 꽃잎이 한장 있다.
수술은 진짜 꽃가루를 달고 있는 2~3개의 기다란 수술과,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노란 가짜 수술 3개가 있다.
꽃 안쪽에 암술이 하나 있는데 수정이 안되면
기다란 진짜 수술이 동그랗게 말리며 자가수정을 한다고 한다.
유혹용 수술뿐 아니라 곤충에 의한 수정에 실패하면
자가수정까지 감행하며 자손을 후대에 전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잎은 대나무 잎과 닮았는데 당나라 시인 두보는 '꽃이 피는 대나무'라 칭하고
수반에 꽂아 두고 감상했다고 한다.
또한 꽃이 질 때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꽃이 핀 자리에서 녹아 내리린다고 하니
시인 두보가 좋아 했다는 사실이 헛말은 아닌듯 하다.
난 산에 다니며 닭의장풀은 너무 흔하게 접해 사진 찍는 데에도 인색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신통치 않은 대우를 받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잎이나 꽃은 나물이나 샐러드, 꽃차 등으로 식용 할 수 있고,
과거에는 꽃즙을 내 비단을 염색하는데 썼다고도 한다.
활용처도 다양한 풀꽃이다.
내가 본 닭의장풀은 짙은 청색과 연한 보라빛 꽃잎을 가진 녀석들인데
드물게 흰색 꽃을 가진 종류도 있다고 한다.
내년 7~8월에는 정갈한 흰색 꽃을 피워내는 달개비가 어디 있나 하며 두리번 거릴 것 같다.
달개비꽃(김영천)
자꾸만 밀려나가는 바다더러
안된다고, 안된다고,
제 몸 데구르르 구르며,
온 몸으로 치받으며,
자갈거리는 돌멩이들
그렇게 떠나보낸 세월이나,
열혈 들끓던 젊음이나,
사랑 따윈 다 헛되더라고,
송림은 아직도 푸르게 서서
갯바람이나 조금씩 흔들어보는 것이지만
오메, 저 깜깜한 숲 속으로는
새파랗게 맺히는 눈물들은 무슨 이유인가?
저리 순결한 몸짓을 보라
우리의 삶은 시정의 그 것들처럼 더욱 진부해도
끝끝내 젊음을 유지하려는 게지
와그르르 밀려와 깨지는
파도처럼
그 어떤 진실보다도 더 진한 빛깔로
한 마디 말도 되지 못할 중얼거림으로
비로소 터치는 입술.
달개비꽃(김영천)
달개비꽃 시퍼런 가슴
예송리 깻돌밭
그 명주바다
파아란 심연이었구나
오호라,
수도없이 피어나던 꽃들이
저렇듯 바람이 되어 일어나거나
우우, 파도로 무너지기도 하는구나
나는 그 중에 같이 푸르거나 흔들리지 못하는 무심이어서
이 난데없는 외로움만 깊어지느니
뚝, 꺽어 향을 맡으면
그대는 어느새 파아랗게 넘치는
그리움이어라
같은 시인의 두가지 '시' 어느 편이 더 와 닿나요?
저는 아래 시에 한표.
풀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해살이풀
속씨식물문 > 외떡잎식물강 > 닭의장풀목 > 닭의장풀과
꽃말 : 순간의 즐거움
드디어 목표의 4/1 지점이 지났네요.
산에 가는 횟수가 주는 대신 뱃살이 산이되고
찍어 놓은 사진 자료는 고갈되고 갈길은 멀어 보이네요...ㅉㅉ
- 물봉선 -
봉선화(봉숭아)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온 꽃이라
당연히 우리나라 꽃으로 생각해 왔는데 찾아 봤더니
인도,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었다.
반면 물가에서 자라는 봉선화란 뜻에서 이름 붙여진 물봉선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북부가 원산지라고 한다.
지금까지 봉선화를 자세히 살펴 본 적이 없는데
물봉선을 검색하면서 같이 찾아 봤더니 정말 꽃모양이 많이 닮아 있었다.
물봉선의 빛깔과 꽃모양이 상당히 독특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설마 그 흔하디 흔한 봉숭아와 닮았으랴 싶었는데...
머리 속에 비석의 문구처럼 강고히 새겨져 있는 고.정.관.념.을 넘어
유연한 사고체계를 가진다는건 어쩌면 희망사항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봉선화의 한자가 봉황새 봉(鳳), 신선 선(仙) 字 인데, 신선이 타고 다녔다는
봉황새와 닮아서 봉선화가 되지 않았나 하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물봉선은 '신선이 타는 봉황새를 닮은 물가에 사는 꽃'쯤 되려나...
물봉선은 8~9월에 꽃이 피는데 어쩌다 한 두 송이만 눈에 띄다
남양주 다산길4코스를 따라 걷다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물봉선 군락과 만나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나 흔한 꽃이었나 싶을 정도다.
귀한 야생화는 여러 사람이 찾으면 훼손될까봐 자생지를 알려 주지 않는게 불문율이라지만
이 곳의 물봉선은 너무 흔해 그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진한 자주색의 물봉선, 노랑물봉선, 흰물봉선, 미색물봉선 등의 종류가 있다는데
나는 그동안 물봉선과 노랑물봉선만 마주 할 수 있었다.
내가 본 두 종류를 비교해 보면 꽃모양은 유사하지만
물봉선은 꽃을 달고 있는 가지인 꽃대가 짧고 비교적 두꺼우며
꿀주머니가 동물의 꼬리처럼 안쪽으로 말려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이에 비해 노랑물봉선은 꽃대가 상대적으로 길고 가늘어
마치 가는 철사에 종이꽃을 메달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이며
꿀주머니는 아래로 숙여져 있을 뿐 말려 있지는 않다.
비슷한듯 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한여름 뙤약볕과 아직은 무뎌지지 않은 초가을 햇볕아래서
붉디 붉은 꽃잎을 활짝 열고 아우성 치던 물봉선...
그렇게 또 한해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다.
물봉선 (권오범)
외로움이 터전인 심심산천
태어나자마자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야 하는 팔자기에
늘 허출한 깔때기가 되었다
꼬리마저 살짝 말아 내린 채
오매불망 미지의 사랑만 그리다 보니
홍 자줏빛으로 달아올라
열없이 건넌 성하의 강,
호시절 지나 처참하게 사그라진 꿈
가까스로 추슬러
부르르 떨리는 조막손만 남았는데
고추잠자리야 헤살부리지 마라
장맛비 유달리 지짐거려
외로움이 독이 되어 서린 몸
나를 건드리지 말아다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으니까
미색물봉선 (김승기)
본바탕은 하얀 색이었어
살다 보니, 살아가다 보니
물이 들더라구
물들지 않으려고 애 많이 썼어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도 써봤어
마음을 비우면 본바탕을 되찾을까
공부도 많이 했어
늙어가면서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주저앉을 뻔 했는지 몰라
이만큼이라도 하얘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몰라
오랜 고행이었어
아직도 수행을 더 해야겠지
반드시 가야 하는 길
끝내 본바탕을 찾지는 못할지라도
지금의 빛깔은 그대로 간직할 거야
앞으로 내딛는 발길
힘들다고 여기서 멈추면
어떤 수행으로도 더는 지울 수 없는
진한 물이 들 거야
외로운 산길
지금까지는 홀로 걸었지만,
이미 누군가 앞에서 걸어갔을 것이고
걸어가고 있을 것이고
뒤에서 누가 또 걸어올 것이니
걷다 보면
함께 만나 길동무 될 거야
행복한 산행이 될 거야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한해살이풀
속씨식물문 > 쌍떡잎식물강 > 무환자나무목 > 물봉선화과
꽃말 :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 me not)
열매가 익으면 스스로 터뜨려 종자가 튀어 나와 붙여진 꽃말이다.
'봉선화연정'의 노랫말이 절로 떠오른다.
손대면 톡하고/터질 것만 같은 그대/봉선화라 부르리 ~~~♬
아아~ 진정 전엔 이런 의미가 있는줄 몰랐다.^^